나는 누구인가 목차
나는 누구인가 - 순진무구한 나를 재발견하기 위한 오쇼의 명상 강의
오쇼 (지은이), 최재훈 (옮긴이) 젠토피아 2018-11-22
책소개
모든 인간의 내재적 잠재성을 경험적으로 체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오쇼의 빛나는 통찰력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순간의 삶의 사는 것, 과거가 없이 사는 것, 결론을 내리지 않고 사는 것, 알지 못하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순진무구함’이다. 과거의 짐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모른 채로 깊은 침묵과 고요 속에서 살아가는 순간에 일어나는 경험이 바로 ‘아름다움’이다.
떠오르는 태양, 무수히 떠 있는 별들, 아름다운 꽃들, 여성이나 남성의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때마다 유심히 관찰해보라. 거기서 늘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대는 마음이 사라지고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그 순간을 맞이했다. 그 순간이 그대를 완전히 사로잡은 나머지, 그대는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다.
목차
초대하는 글 Preface
제 1 장 경이驚異로 가득 찬 눈동자 The Eyes of Wonder
제 2 장 가슴과 마음 Hearts and Minds
제 3 장 앎은 지식과 다르다 Knowledge Is Not the Same as Knowing
제 4 장 정답은 위험하다 Answers Are Dangerous
제 5 장 오래된 습관 Old Habits Die Hard
제 6 장 어린아이처럼 Like a child
책속에서
‘지식’이란 그대가 계속해서 외부의 정보와 간접적인 경험을 긁어모아서 범주화하고 기억해둔다는 걸 뜻한다. ‘배움’이란 그대가 아무것도 모아두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 그대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에 대해 그저 수용적인 상태로 머문다는 뜻이다. 배움은 열린 마음의 상태이다. 하지만 더 많은 지식으로 알수록 그대는 더 굳게 닫힌다. 그대는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그 지식이 늘 방해가 된다. 그대가 내 말을 듣고 있는 지적인 사람, 푼디트 같은 학자의 범주에 속한다면, 그대는 내 말을 단순하게, 직접적으로 귀담아 들을 수가 없다. 그대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다. 내가 말을 하는 동안, 그대는 속으로 판단하고 평가하고 비판하고 있다. 그것은 대화가 아니라 토론이다. 그대는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결코 침묵하고 있지 않다. 그대의 지식이 계속해서 머리 주변을 빙빙 맴돌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의 지식은 내가 하는 모든 말을 가로막고 왜곡한다. 그래서 그대에게 도달하는 것은 모두가 진짜가 아닌 게 된다. 그대는 단지 자신의 지식이 받아들이도록 허락하는 것만을 받아들이게 된다.
배움의 마음은 자신의 과거로부터 전혀 방해받지 않은 상태로 경청하는 마음이다. 활짝 열린 상태, 거울처럼 맑은 상태로 비쳐지는 모든 걸 있는 그대로 반사해서 비춰줄 뿐이다. 배우기 시작하면 앎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앎은 그대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앎에 도달한 사람은 자신의 무지함을 의식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모른다는 걸 안다. 이러한 앎 속에서, 무지함은 변화, 변형, 혁명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두 번째 바보의 상태에서 세 번째 바보의 상태, 축복받은 바보로의 도약을 감행하라. 그런 축복받은 바보들에게 내 모든 은총을 전하는 바이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오쇼는 인간의 의식을 발전시키는데 있어서 온갖 난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인류에게 도움을 준 깨달은 스승이다.
달라이 라마 (His Holiness the 14th Dalai Lama)
모든 인간의 내재적 잠재성을 경험적으로 체득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오쇼의 빛나는 통찰력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오쇼의 책은 모든 공공도서관에 비치되어야 하며,
더 높은 차원의 ‘참나’를 추구하는 사람들 모두가 집에 두고 읽어야 한다.
디팩 초프라(Deepak Chopra)
나의 오랜 벗 디팩 초프라를 통해 오쇼의 책들을 접한 뒤로
나는 삶의 내면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게 되었다.
오쇼가 살아있을 때 만나지 못한 게 너무나 안타깝다.
마돈나(Madonna)
차 한 잔 들고 가시게!
매순간 나는 그대에게 차 한 잔을 권한다.
그것을 마셔보라.
그 순간의 온기를 느끼고 그 음악과 침묵을 느껴보라.
그리고 거기서 흘러넘치는 사랑을 느껴보라.
그 모든 것에 흠뻑 젖어보라.
잠시만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옆으로 치워두어라.
바라보고 판단하고 비판하고, 믿거나 믿지 않고,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모든 마음을 잠시라도 잠재워두어라.
잠시만이라도 모든 걸 있는 그대로 수용해보라.
그러면 그대는 순진무구함이 뭔지를 알게 되리라.
그리고 그 순간, 그대는 아름다움이 뭔지도 알게 되리라.
아름다움은 순진무구함 속에서 일어나는 체험이다.
그것은 순진무구함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순간의 삶을 사는 것, 과거가 없이 사는 것, 결론을 내리지 않고 사는 것, 알지 못하는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순진무구함’이다. 과거의 짐을 내려놓고 아무것도 모른 채로 깊은 침묵과 고요 속에서 살아가는 순간에 일어나는 경험이 바로 ‘아름다움’이다.
떠오르는 태양, 무수히 떠 있는 별들, 아름다운 꽃들, 여성이나 남성의 얼굴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때마다 유심히 관찰해보라. 거기서 늘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대는 마음이 사라지고 어떠한 결론도 내리지 않은 채 즉흥적으로 그 순간을 맞이했다. 그 순간이 그대를 완전히 사로잡은 나머지, 그대는 과거와 완전히 단절된다.
그대가 과거로부터 완전히 단절될 때, 자동적으로 그대는 미래로부터도 단절된다. 과거와 미래는 동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그 둘은 서로 분리된 게 아니다. 동전을 던지면 때로는 앞면이 나오고 때로는 뒷면이 나오지만, 반대쪽 면은 늘 뒤에 숨어 있다.
과거와 미래는 동전의 양면이다. 그 동전의 이름이 바로 ‘마음’이다. 그 동전을 완전히 떨쳐버리는 것, 그것이 곧 ‘순진무구함’이다. 그러면 그대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아는 것이 없다. 하지만 그대는 존재하고, 존재계도 존재한다. 이 둘의 존재함, 있음(is-ness)-작은 ‘있음’은 그대이고 무한한 ‘있음’은 존재계이다-그 둘이 만나서 하나가 될 때가 바로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순간이다.
‘순진무구함’은 문이다. ‘순진무구함’이라는 문을 통해서 그대는 ‘아름다움’으로 들어간다. 그대가 순진무구할수록, 존재계는 더욱 아름다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