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새로운
의식의
차원이
열리다
Accessing The Power of Now
당신의 의식이 밖을 향하고 있을 때,
마음과 세계가 솟아납니다.
당신 의식이 내면을 향할 때,
자신의 근원을 깨닫고,
집으로 돌아와 드러나지 않게 됩니다.
01
지금 이 순간의 의미
Being and Enlightenment
─────ㆍ자유가 시작되는 순간ㆍ─────
탄생과 죽음의 지배를 받는 수많은 삶의 모습 너머에,
항상 현재의 순간에 존재하는 영원한 '하나의 삶'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일컬어 신이라고 하지만,
나는 존재라는 단어를 사용하곤 합니다.
존재라는 단어는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신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신이라는 말은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잘못 사용된 까닭에, 우리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특정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되었고, 그것은 닫힌 개념이 되어버렸습니다. 반면에 존재라는 말은 열린 개념이라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한함을 유한한 실체로 축소하지 않습니다. 존재라는 단어에서 어떤 정신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존재 그 자체이자 본성이며, 그것을 느끼는 순간 당신은 바로 존재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존재라는 단어를 실제로 경험하기 위한 작은 단계일 뿐입니다.
존재는 형태 너머에만 있지 않으며,
모든 형태의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존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본질,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 그 무엇입니다.
이는 존재는 당신의 가장 깊은 자아이며,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존재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그것을 붙잡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해하려고도 하지도 마십시오.
오직 마음이 고요해지는 순간에만 우리는 존재를 알 수 있습니다.
현재에 머물며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할 때,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존재란 정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에 대한 인식을 되찾고, '느낌 - 자각' 의 상태에 머무는 것이 바로 깨달음입니다.
깨달음이라고 하면 우리는 초인들이 도달하는 경지를 떠올립니다. 에고는 우리가 그렇게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깨달음은 그저 존재와 하나됨을 느끼는 자연스러운 상태입니다. 깨달음은 헤아릴 수도 파괴할 수도 없는그 무엇, 본질적으로는 당신이지만 당신보다 훨씬 위대한 무언가와 연결된 상태입니다. 이름과 형태 너머에 있는 당신의 진정한 본질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지 못하면,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의 세계와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이 생겨납니다. 그러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스스로를 고립된 파편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두려움이 생겨나고 안팎의 갈등은 일상이 됩니다.
존재와의 연결을 방해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마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생각을 하도록 강요합니다. 생각을 멈추지 못하는 건 끔찍한 고통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고통을 겪고 있는 까닭에 우리는 고통을 실감하지 못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정신적 소음과도 같은 생각에 지속적으로 시달리다 보면, 존재와 분리할 수 없는 내면의 고요함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낸 거짓 자아가 생겨나면서 두려움과 고통의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마음과 자신을 동일시하면 생각의 장막이 드리워집니다. 개념, 표식, 이미지, 말, 판단, 정의와 같은 생각의 활동이 만들어낸 이 장막은 모든 진실한 관계를 차단합니다. 그것은 당신과 자신 사이를, 당신과 동료 사이를, 당신과 자연 사이를, 당신과 신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이 생각의 장막 때문에 당신은 스스로 '다른 것'과 완벽히 분리되어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각각 분리되어 있는 형상과 신체적 외형의 밑바닥에서 그 모든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본질적인 사실을 잊게 됩니다.
마음은 올바르게 사용하면 훌륭한 도구가 됩니다. 그러나 잘못 사용할 경우, 마음은 엄청난 파괴력을 갖습니다.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마음을 잘못 사용한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보통 당신은 마음을 전혀 사용하지 않으니까요. 오히려 마음이 당신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질병입니다. 당신은 마음이 곧 자신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망상이며, 도구에게 당신의 자리를 빼앗기는 것과 같습니다.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도구에 불과한 마음에게 소유당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당신을 소유하는 실체가 곧 당신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유의 출발점은 당신 자신이 소유하는 실체,
즉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되면 당신은 그 실체를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사람을 관찰하기 시작하는 순간,
더 높은 수준의 의식이 깨어납니다.
그러면 생각 너머에 거대한 앎의 영역이 있으며, 생각은 그 앎의 영역에서 아주 작은 부분일 뿐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아름다움, 사랑, 창조력, 기쁨, 내면의 평화와 같은 정말로 중요한 모든 것들이 마음 너머로 솟아오르는 것을 느낍니다.
당신은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ㆍ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ㆍ─────
다행스러운 것은 당신 스스로
마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유일하고 진정한 자유입니다.
당신은 지금 당장 그 첫걸음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
머릿속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세요.
당신의 머릿속에서 오래된 테이프처럼
몇 년째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생각의 패턴에
가능한 한 자주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생각하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머릿속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그곳에 목격하는 존재로 있으라는 의미입니다.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에는 편견을 갖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어떠한 판단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에게 들려오는 머릿속의 목소리를 판단하게나 비난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봤자 똑같은 목소리가 뒷문을 통해 다시 들어올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곧 깨닫게 될 겁니다.
여기에 목소리가 있고, 나는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이것은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자각입니다.
자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은 생각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음 너머에서 떠오르는 것입니다.
어떤 생각에 귀 기울일 때, 당신은 그 생각은 물론이고 그 생각의 관찰자로서 자신을 자각하게 됩니다. 그 순간 의식의 새로운 차원이 열립니다.
생각에 귀 기울일 때,
생각 이면이나 그 밑바닥에 자리한 의식 있는 존재,
즉 당신의 깊은 자아를 느낍니다. 그러면 당신을 지배하고 있던 생각은
그 힘을 잃어버리고 순식간에 가라앉습니다.
당신이 마음에 동화되어 마음에 힘을 실어주는 행위를
더 이상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강박적으로 이어지던 생각도 사라집니다.
생각이 가라앉으면 정신의 흐름이 끊기는 순간,
'무심無心’의 공백을 경험하게 됩니다. 처음에 그 공백은 아주 짧은 순간,
단지 몇 초에 불과할 겁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점차 길어집니다.
이런 공백을 경험하는 순간 당신은 내면에서 고요와 평화를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항상 마음에 가려져서 보지 못했던,
존재와 하나됨을 느끼는 자연스러운 상태가 시작됩니다.
수행을 지속하다 보면 고요와 평화를 더 깊이 인지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느끼는 고요와 평화는 한없이 깊어질 수 있습니다.
또한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기쁨이 미묘하게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바로 존재에 대한 기쁨입니다.
이렇게 내부에서 존재와 연결되어 있을 때, 당신은 마음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상태보다 더 또렷하고 분명하게 깨어 있게 됩니다. 이 순간 당신은 완전하게 존재합니다. 또한 육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에너지 장의 주파수도 높아집니다.
동양에서 흔히 말하는 무심無心의 상태로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순수한 의식의 상태를 자각하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는 당신의 존재 자체가 너무나 강렬하고 충만한 기쁨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이에 비하면 생각이나 감정, 당신의 육체와 외부 세계는 미미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이런 순수한 의식의 상태는 자기중심적인 이기적 상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없어지는 상태입니다. 또한 과거에 당신이 '당신 자신'이라고 생각했던 존재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현존(이 순간에 존재함)은 바로 당신의 본질인 동시에 그보다 더욱 위대한 그 무엇입니다.
'생각하는 사람을 관찰하는' 대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흐름을 멈출 수 있습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집중하세요.
이렇게 하면 깊은 만족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의식을 마음의 활동으로부터 멀리 떼어놓고, 극도로 또렷하게 깨어 있지만 생각은 하지 않는 무심無心의 공백이 생깁니다. 이것이 명상의 본질입니다.
일상생활에서 늘 하던 행동을 하되
그 행동에 모든 주의를 집중하는 것으로도 수행을 할 수 있습니다.
그저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한 평범한 행동이
그것에 집중하는 순간 그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예를 들어
집이나 직장에서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당신이 내딛는 모든 걸음걸음에,
모든 동작에, 심지어는 호흡에도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보세요.
그 순간에 온전하게 존재하세요.
손을 씻을 때에도 물소리, 물의 느낌, 손의 움직임,
비누향기 등 손을 씻는 행위와 관련된 모든 감각에 집중해 보세요.
자동차를 탈 때에도
차 문을 닫고 잠시 모든 동작을 멈춘 채
당신의 호흡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고요하지만 강력한 존재감을 깨닫습니다.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로 내면의 평화를 느끼는지를 보면
당신이 성공적으로 수행을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깨달음을 향한 여행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단계는 자신을 마음과 동일시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마음의 흐름이 끊어질 때마다 의식의 빛은 더 강해집니다.
마치 아이의 재롱에 미소 짓는 것처럼, 어느 날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미소 짓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목소리를 더 이상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당신의 자아 의식이 더 이상 거기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ㆍ자유로 향하는 열쇠ㆍ─────
우리는 성장하는 과정에서
개인적, 문화적 환경을 바탕으로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마음의 이미지를 만들어 갑니다. 유령과도 같은
이 이미지를 흔히 에고ego라고 부릅니다.
에고는 마음의 활동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우리가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할 때에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에고라는 말의 의미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겁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는 에고란 마음과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할 때 생성되는 거짓 자아를 가리킵니다.
에고에게는 현재의 순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에고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과거와 미래입니다. 이처럼 진리에 역행하는 에고의 상태에서는 당신의 마음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에고는 과거를 항상 생생하게 살아있게 유지하려고 합니다. 과거가 없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미래에 투영하면서 지속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그 속에서 해방감이나 성취감을 얻고자 합니다. '언젠가 이런저런 일이 생기면, 나는 괜찮을 거야. 행복하고 평화로워질 거야'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심지어 에고가 현재와 관련이 있을 때조차도 에고는 현재의 순간을 보지 않습니다. 에고는 과거의 시각으로 현재를 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온전하게 인식하지 못합니다. 마음이 투영하고 있는 미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현재의 순간을 축소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관찰해보면 에고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유로 향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은 현재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곧 마음이라고 믿고 있는 한, 현재의 순간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깨달음은 생각을 딛고 솟아오릅니다. 깨달음의 상태에서도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생각하는 마음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집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으로 사용하게 될 겁니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사용하지만, 당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들려오는 머릿속의 목소리에서 자유로워져서 내면의 고요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사용할 때, 특히 창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경우, 생각과 고요함, 마음과 무심의 사이를 시계추처럼 몇 분 간격으로 오고갑니다. 무심이란 생각에서 벗어난 의식을 말합니다. 오직 이와 같은 방식으로만 생각은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창조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더 넓고 광대한 의식의 영역과 더 이상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 생각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결실도 없는, 파괴적인 것으로 변화합니다.
─────ㆍ감정을 지켜보는 자ㆍ─────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란
단순히 생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의 감정은 물론이고,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정신적, 감정적 반응의 유형까지도 모두 포함합니다.
감정은 마음과 몸이 만나는 곳에서 솟아납니다.
그것은 마음에 대한 몸의 반응입니다. 혹은 몸 안에 마음이
반영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좋아하고, 싫어하고, 판단하고, 해석하면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들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면, 다시 말해 관찰하는 의식으로서 현재에 존재하지 못하면, 감정적 에너지의 부담은 더 커집니다. 감정을 느낄 수 없거나 감정과 단절된다면, 당신은 결국 몸의 문제나 증상으로 감정을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느끼기 어렵다면,
몸 안의 에너지 장에 온 신경을 집중해보세요.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당신의 몸을 느껴보세요.
그러면 당신의 감정을 느낄 수 있을겁니다.
정말로 당신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당신의 몸을 들여다보세요.
몸은 언제나 당신의 마음을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몸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느껴보세요.
생각과 감정 사이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면,
생각은 거짓이고 감정이 진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당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절대적인 진실이 아닌,
그 순간 당신의 마음 상태에 대한 상대적인 진실입니다.
어쩌면 생각으로는
무의식적인 마음의 활동을 자각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활동은 항상 어떤 감정으로 몸에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것을 자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감정을 바라보는 건,
앞에서 이야기한
생각에 귀 기울이거나 생각을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생각은 머릿속에 있는 반면,
감정은 강력한 물리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 까닭에
주로 몸에서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감정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도
감정이 몸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더 이상 감정이 아닙니다.
당신은 관찰자이며 목격하는 존재입니다.
이런 연습을 하다 보면,
내면에 무의식 상태로 있는 모든 것이
의식의 빛 속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습관을 들이세요.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당신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줄 겁니다.
그러나 분석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저 바라보세요.
내면에 집중하세요.
감정의 에너지를 느껴야 합니다.
만약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내면의 에너지장에 더 깊이 집중합니다.
그것이 존재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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